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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월드 2인극 페스티벌] 튜링 테스트의 서사적 모티프와 토론 형식을 활용한 SF 연극 - 극단 신인류, <이를 탐한 대가>, 연극평론가 백로라

연극평협 2024. 4. 19. 23:59

튜링 테스트의 서사적 모티프와 토론 형식을 활용한 SF 연극

- 극단 신인류, <이를 탐한 대가>

 

 

 

백로라(연극평론가, 숭실대 교수)

 

 

  제23월드 2인극 페스티벌공식참가작 <이를 탐한 대가>(김성진 작, 조남형 연출, 2023.11.7.-11.9, 민송아트홀 2)는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비인간(인공지능)과 구별되는 인간 존재의 고유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AI(혹은 복제인간)를 통해 인간의 존재론적 위기를 경고한다는 점에서 영화 <블레이드 러너><엑스 마키나>와 유사하지만, 영상 언어가 아닌 무대 언어를 통해 SF적 상상력을 펼친다는 점에서는 그와 차별화된다.

 

김성진 작, 조남형 연출 <이를 탐한 대가> ⓒ 제23회 월드 2인극 페스티벌 제공

 

  막이 오르면 사방이 흰색으로 칠해진 실험실 내부에 동면기와 테이블이 보인다. 재미교포 탐이 테이블에 앉아 있고, 무기징역수 수한이 잠에서 깨어나 동면기에서 나온다. 이들은 생명연장재단과의 계약으로 100년 동안 잠들어 있었던 것인데, 깨어나자마자 튜링 테스트 참여를 요구받는다. 두 인물 중에서 한 명은 인공지능인데, 사회로 나가려면 1시간 안에 인공지능이 누구인지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제한 시간을 알려주는 스톱워치와 15분마다 실내에 주입되는 가스 때문에, 이들은 어쩔 수 없이 튜링 테스트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인공지능을 찾기 위해 스스로 인간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무의식, 본능, 도덕성, 탐욕, 신앙심 등등 인공지능과 구별되는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에 대해 격렬한 토론을 이어나가지만, 인간과 인공지능을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주어진 시간이 다가오자 수한은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면서 권총으로 탐을 위협하고 탐은 죽음에 직면하여 신에게 기도를 한다. 바로 이 모습을 보고 수한은 탐이 인간이라고 확신하고, 살아나가기 위해 탐을 죽인다. 그러나 잠시 후, 죽은 줄 알았던 탐이 일어나서 자신이 인공지능이고 수한이 인간임을 밝힌다. 이 테스트는 인공지능을 찾아내는 실험이 아니라 찾아낼 수 없음을 확인하는 실험이었던 것이다. 인공지능 탐은 테스트를 통과하였기에 사회로 나가게 되고, 수한은 15분마다 주입되었던 수면 가스로 인해 다시 잠에 빠져들며, 인간과 인공지능을 실험 대상으로 하는 튜링 테스트가 지속될 것이 암시되면서 막이 내린다.

 

  이처럼 <이를 탐한 대가>튜링 테스트를 주요한 서사적 모티프로 삼고 있다. 본래 튜링 테스트는 앨런 튜링이 제안한 것으로, 컴퓨터가 인간과 얼마나 비슷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 관찰하여 기계의 사고능력 여부를 판별하는 테스트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미래사회를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로 그린 SF 영화에서 흔히 발견되는 서사이기도 한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인간이 존재론적 위기에 직면하는 상황을 다룬 <엑스 마키나><블레이드 러너>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이 연극도 서사나 주제 면에서 그러한 작품의 연장선상에 있기에, 기존의 영화와 다르게 어떻게 튜링 테스트를 무대 위에 재현하는가 하는 부분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이 연극에서 대사의 비중이 상당히 크고, 그 극적 기능도 기존의 연극과 차별화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극의 출발지점에서부터 토론을 통해 인공지능을 찾아내라는 미션이 부여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액션이 두 인물의 대사에 집중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대사가 갈등을 유발하거나 서사를 이끌어가는 극적 기능을 소극적으로 수행하는 데 있는데, 이것은 대부분의 대사가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한 것으로 논증적, 설명적인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는 데서 연유할 것이다.

 

  연극무대에서 이와 같은 설명적, 논증적인 대사가 큰 비중을 차지할 경우, 연극의 현재성이 약화되어 긴장감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 연극은 의외로 긴장감을 유지한다. 극작술의 힘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실제로 이 연극은 토론 형식으로 진행되는 극의 특징을 고려하여 관객을 지루함에 빠뜨리지 않게 하려고 다양한 극적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시간의 경과를 알리는 스톱워치, 15분마다 주입되는 가스, ‘열어보지 말라는 문구가 적힌 금기의 상자, 상자 속의 권총, 죽었던 인물이 되살아나는 결말 부분의 반전 등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와 아울러 인공지능과 인간이 서로 자신이 인간임을 입증하기 위해 토론을 벌이는 극적 상황의 특수성은 그 자체로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다. 이처럼 극 전체를 튜링 테스트로 구성하고 두 인물의 토론만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것은 흔치 않은 경우로서 작가와 연출의 뚝심이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 덕분에 관객의 몰입도가 높은 2인극의 특성이 잘 살아났을 뿐 아니라 주제가 선명하게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튜링 테스트를 서사적 모티프로 삼고 있는 기존의 SF 영화와 차별화된 문제의식과 전망을 보여주지 못한 점은 한계로 지적할 만하다. 또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인공지능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것과 무관하지 않겠지만, 수한과 탐이라는 인물이 대사 톤이나 논리 전개의 방식 면에서 변별점을 보여주지 못한 점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두 인물의 토론 과정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열되거나 반복되어 전체적으로 단조롭다는 인상을 주는데, 이는 인공지능과 차별화되는 인간 고유의 특성에 대한 작가적 사유가 조금 더 요구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김성진 작, 조남형 연출 <이를 탐한 대가> ⓒ 제23회 월드 2인극 페스티벌 제공

 

 

  요컨대, 본래의 튜링 테스트가 컴퓨터와 인간의 유사성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라면, 이 연극에서 그것은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컴퓨터(인공지능)’스스로를 인공지능과 구별하지 못하는 인간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존재론적 위상이 전도된 상황을 확인시켜준다. 그리고 연극의 표제에서 짐작되듯이,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원인이 효율성과 편리성만을 추구해온 인간의 탐욕에 있음을 경고한다. 주로 영화에서 다루어왔던 SF 서사와 주제를 연극 무대에서 실험하였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신선하고 도전적인 공연이라 할 수 있다. , 이러한 도전과 실험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과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기존의 관점을 뛰어넘는 전복적인 발상과 상상력이 필요해 보인다. 새롭고 다양한 연극무대를 모색하는 극단 신인류의 지속적인 도전을 기대해 본다.

 

-제23회 월드 2인극 페스티벌 공식 참가작

연극 <이를 탐한 대가>

공연 일시 : 2023.11.07. ~ 11.09.

공연 장소 : 민송아트홀 2관 

작|김성진

연출|조남형

극단 신인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