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비평

[제23회 월드 2인극 페스티벌] 과학적인 사유에 짓눌린 발칙한 상상력, <Constellations>, 연극평론가 최영주

연극평협 2024. 2. 2. 12:46

과학적인 사유에 짓눌린 발칙한 상상력, <Constellations>

 

최영주(연극평론가)

 

    “왜 제목을 한국어로 번역하지 않고 영어 그대로 표기했을까?” 별무리, 성좌에 관한 연극? 연극 제목치고는 좀 요상하다. 사전을 찾아 의미를 확인했다. 별무리, 성좌! 공연을 기다리며 뒤에서 수군거리는 커플의 소리를 듣는다. 이 희곡이 아주 실험적이며 유명하단다. 그토록 좋은 작품이니 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선정했겠지, 한껏 부푼 호기심과 기대를 안고 극장에 들어선다. 극장문을 통과하니 민송아트홀 2관의 작은 빈 무대에 놓인 아크릴과 같은 반투명 재질의 테이블과 의자가 눈에 띈다. 생경할 정도의 소박한 무대이다. 두 젊은 배우가 무대에 들어선다. 희곡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데다가 무대마저 어떤  상황인지 제시하지 않기에 모든 관심이 두 배우에게 향한다.

    <Constellations>는 포스트드라마 계보의 희곡으로 플롯의 양식도 인물의 구성 방식도 기존의 드라마 중심의 연극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영국 극작가 닉 페인(Nick Payne)이 스물  다섯의 나이인 25세, 2012년에 발표한 이 희곡은 영국 이브닝스탠더드 최우수 희곡상을 수상하였고, 올리비에 최우수 희곡상 후보에 올랐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희곡의 우수성 때문인지 초연 이후 영국 안팎에서 빈번히 공연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내에서도 2019년 프로젝트 그룹 ‘구상성단작전’이 소개한 이래 여러 단체에 의해 공연되었다고 한다. 기존의 드라마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워서인지 인터넷에서 소개하는 공연마다 무대 이미지가 제 각각이다. 

닉 페인 작, 강수경 연출 &nbsp;<Constellations>&nbsp;ⓒ 제23회 월드 2인극 페스티벌 제공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희곡의 의도에 대해 “우주의 여러 층을 지나면 여러 버전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그 아이디어를 희곡의 형태, 구조로 구성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관객 역시 삶이 유한하다는 생각을 뭉개버리면서 우리가 동시에 존재하며 무한히 반복될 수 있다는 우스꽝스런 느낌을 공유하고 싶다”고 부언하였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우주물리학자인 여주인공 마리안이 롤란드에게 평행우주론을 설명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우주에는 지구 외에 엄청난 수의 평행우주들이 존재하며, 어느 주어진 순간 여러 개의 결과가 동시에 공존할 수 있다고 한다. 첫 장면부터 유니트마다 반복되는 두 인물의 대사는 각기 다른 평행 우주에서 공존하는 자아의 말과 행동의 결과랄 수 있다. 이론적으로 가능할지라도 믿기 어려운 공상에 가까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진중한 과학적 이론이 개입되어 있지만, 혹시 그럴 수 있다고 믿기에는 너무나도 허무맹랑하다.       

    희곡은 지인의 바비큐 파티에서 양봉업자 롤란드와 우주물리학자 마리안이 우연히 만나 농담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만남과 대화가 반복되는 가운데 평행하는 관계 사이에는 미세한 차이가 개입된다. 즉, 두 인물은 커플이 되지만 어느 시점에서 마리안이 외도를 고백하면서 갈등과 불화가 불거진다. 순간 긴장이 증폭되고 갈등이 상승한다. 이후의 장면들은 불화에 반응하며 다르게 전개된다. 롤란드가 마리안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둘은 결별하며, 마리안에게 두 달의 생존만이 허락된 죽음을 앞둔 상황이 암시된다. 우리가 보게 되는 이들의 마지막 모습은 이미 헤어진 지 한참이 경과한 상황에서 친구의 결혼식을 위해 댄스 교습실에서 춤을 배우다가 생긴 우연한 해후와 평행하는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이다. 사라진 장면을 통해 그 어느 별에 살고 있던 마리안의 죽음을 예측할 수 있다. 결국 행운과 같은 만남으로 시작된 인연은 갈등과 죽음, 그리고 결별을 겪으며 사라지거나 남기도 한다. 

닉 페인 작, 강수경 연출 &nbsp;<Constellations>&nbsp;ⓒ 제23회 월드 2인극 페스티벌 제공

    창작집단 ‘보라, 인간’의 <Constellations>는 연출을 하면서 마리안으로 분한 강수경과 롤란드로 분한 이재호의 2인극이다. 기존의 공연들에서 두 배우가 마리안과 롤란드를 연기하거나 여러 배우가 각기 평행하는 자아를 연기하는 방식 가운데 창작집단 ‘보라, 인간’은 전자를 택한 것이다. 평행하는 자아가 동일인으로 연출되면서 관객은 시각적으로 두 인물이 같은 삶을 여러 번 반복하여 살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이 같은 발상은 과학 이론에 근거했을 지라도 허구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희곡의 내용과 형식을 구성하는 우주 평행이론이 익숙지 않은데다가 무겁게 느껴져서인지 강수경과 이재호는 평행이론 자체를 삶에 대입시키기에는 희극적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섬세하게 언어가 달라지면서 만들어지는 삶의 차이 역시 무뎌지고 만다. 경쾌한 삶이 점차 무거워지고 비극적으로 변화하는 매듭을 찾아 전체적인 리듬이 명료하게 갈무리되었다면 의미가 더 선명해졌을 법하다. 7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이 공연의 리듬을 빠르게 재단해 버린 탓도 있다. 개막작의 무대에 선 것 자체가 젊은 배우들에게 긴장을 일으켰을 수도 있다. 

    창작집단 ‘보라, 인간’의 <Constellations>는 매우 흥미로운 텍스트였지만, 두 배우는 자신에게 주어진 무대에서 한껏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쳐 보일만한 여유는 없었던 듯싶다. 진지하고 정성스러웠던 성실한 연기에서 나아가 언어와 인물을 가지고 유희하듯이 유연하게 무대를 살려낼 수도 있었을 법하다. 작가 스스로 기존 드라마의 틀을 벗어버린 상황에서 연출가나 배우 역시 좀 더 자유로운 상상력을 만끽해봄직 했다. 기왕 나선 무대에서 2인극이 주는 특권을 살려 배우의 역량을 자유롭게 펼쳐 보일 수도 있었다. 번역극의 어색함을 뛰어넘고 삶의 실존적 상황으로 뚫고 들어가 인물들에 공감하며 자신들의 상황으로 내재화시킬 수도 있었을 법하다. 이 같은 욕심에도 불구하고 젊은 연극인들이 동시대의 실험적인 연극을 한다는 과감함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 자신의 경험을 갖고 우리 스스로 이러한 양식의 텍스트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또 다른 욕심을 꿈꾸게 하는 공연이기도 하다.    

 

-

제23회 월드 2인극 페스티벌 공식 참가작

연극 <Constellations>

공연 일시 : 2023.10.31. ~ 11.02.

공연 장소 : 민송아트홀 2관 

닉 페인

연출강수경

창작집단 보라,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