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지엄(비평워크샵) 15

[2024 가을 비평워크숍(수강생 비평문)] 무심한 슬픔, 태도를 지적하다 - <애도의 방식>

권라희   경계는 흐릿하다. 폭력의 순환고리가 이어진 가정과 학교, 서로 얽힌 관계 속.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은 불분명하고 책임과 회피의 가늠 또한 무색하다. 저마다의 선택으로 그 시간을 떠나보낸다. 그 무엇도 명확히 구분되거나 해결되지 않은 채 삶의 시간은 그대로 흘러간다. 연극 애도의 방식>에서 목격한 현재의 단면이다.  흩어진 점으로 이어진 주제  연극 애도의 방식>은 소설가 안보윤의 단편소설 ‘완전한 사과’와 ‘애도의 방식’, ‘딱 한 번’을 원작으로 삼고, 등장인물과 관계를 교차시켜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냈다. DAC Artist(두산아트센터 아티스트)로 선정된 연출가 신진호의 작품이다. 배우는 단 6인, 이들은 여러 인물을 연기하며 3막으로 나뉜 극에서 스치듯 만나고 강력하게 얽혔다가 떨어진다..

[2024 가을 비평워크숍(수강생 비평문)]창문 너머의 비밀, 애도의 자세 - <애도의 방식>

최서율   애도는 ‘돌이킬 수 없는’ 특정 사건과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감정이다. 타인의 죽음에서 비롯된 상실감과 슬픔 속에서 애도는 자라난다. 자라난 애도는 두 가지 가능성의 세계로 향하게 되는데, 이를 단정적으로 표현하면 ‘방치’ 또는 ‘치유’이다. 애도의 감정을 적절한 시기에 잘 위로한다면 치유되지만, 충분히 애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때는 방치된다. 방치된 애도는 트라우마(Trauma)의 형태로 바뀌어 뜻하지 않은 순간에 발현되기도 한다.  2010년대 초반, 세월호 참사 이후 애도와 고통에 관해 이야기하는 수많은 연극이 상연되었다. 이때 다루어진 애도란 범국가적 속성의 것일 때가 많았는데, 다양한 사람이 겪는 애도를 어떻게 치유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인지가 연극의 골자였다. 그러나 2..

[2024 가을 비평워크숍(수강생 비평문)]오늘의 이야기는 내일의 전설이 된다 - <이야기와 전설>

박혜림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은 이제 100년은 물론이고 앞으로의 10년도 쉽게 예측 불가능하게 만든다. (조엘 폼므라 작·연출, LG아트센터 LG SIGNATURE홀, 2024.11.07~11.10)은 바로 그러한 미래에 관한 청사진 같다. 공연은 현재에서 얼마의 시간이 흐른 미래의 모습을 그린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과 인간이 함께하는 미래가 배경이다. 이 미래의 모습은 마냥 낯설지만은 않다. 기술과 사회의 발전이 점차 빨라지며 삶의 모습도 그에 맞춰 실시간으로 변하는 시대다. 21세기 초입과 비교했을 때 한 세기가 절반도 지나지 않은 지금, 이미 많은 삶의 양식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에 등장하는 로봇의 모습이나 사람들의 모습은 새로운 듯하지만 동시에 익숙한 부분들도 있다. 빠른 사회의 변화 ..

[2024 가을 비평워크숍(수강생 비평문)] 빼앗긴 대사관, 여기에 등장하다-<이것은 대사관이 아니다>

김수희   2024 SPAF 작품인 이것은 대사관이 아니다>는 독일 리미니 프로토콜의 슈테판 카에기(Stefan Kaegi)가 기획한 작품으로, 다큐멘터리 연극의 형태를 보인다. 공연은 예민한 대만과 중국의 정치적 관계를 대만인들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 작품은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볼 수 있다. 하나는 대만과 중국의 사회‧정치‧문화‧역사를 아우르는 광대한 쟁점을 퍼포먼스로 적용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젠 조금은 익숙해진 독일 리미니 프로토콜(Rimini Protokoll) 연극집단의 작업에 참여해 보는 것이다.  낯설지 않도록 천천히   그동안 리미니 프로토콜의 한국 공연은 칼 마르크스: 자본론, 제1권>(2009.3.27.∼28), 광주>(2014.4.26.∼27), 부재자들의 회의>(2022..

[2024 가을 비평워크숍(수강생 비평문)] 풍요로운 기억의 만찬 - <바이 하트 By Heart>

최성문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난 1977년생 티아고 호드리게즈(Tiago Rodrigues)는 배우이면서 극작가이고 연출가이다. 1인 3역을 소화하는 그를 무대에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는 바로 2024 SPAF(서울국제공연예술제) 해외 초청작인 연극 바이 하트>(티아고 호드리게즈 작·연출·출연, 대학로극장 쿼드, 2024.10.18.~20)에서이다. 그는 스무 살 무렵부터 극단에 소속되어 연극 작업을 했으며 이 시기에 극작법이나 공동창작 작업을 훈련받았다고 한다. 배운 것을 바로 실험해 볼 수 있는 환경은 예술가들에게 자신만의 예술창작 방식을 다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호드리게즈가 경험한 것들은 시간이 흘러 연극 바이 하트>를 낳을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으리라 여겨진다. 2013년 리스본에 ..

[2024 가을 비평워크숍(수강생 비평문)] 경계 없는 미래를 꿈꾸는 11개의 이야기 - 조엘 폼므라, <이야기와 전설>

허재홍 낯익은 로봇, 새로운 접근  리들리 스콧의 영화 블레이드 런너>(1982)를 떠올려 본다. 디스토피아가 되어버린 근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추격당하며 죽어가는 인조인간들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이야기다.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1995)도 생각난다. 몸이 기계로 바뀐 세상에서 인간과 기계의 차이는 무엇인가를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두 작품에 나타난 사유는 21세기 초까지 사이언스 픽션과 사이버 펑크에서 수차례 반복되었다. 이처럼 인공의 몸과 만들어진 기억을 매개로 하여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주제는 ‘드라마’에서 익숙한 것이다.  조엘 폼므라의 이야기와 전설>의 홍보문구를 보았을 때 처음 느끼는 감각도 낯익음이다. “AI 휴먼이 일반화된 세상”이 사실 연극 무대에서나 드물..

[2024 가을 비평워크숍(수강생 비평문)] 폭력을 둘러싼 ‘맴돎’의 미학 - <애도의 방식>

차성환    신진호 연출은 그동안 카르타고>, 라이더-On the radar>, 소년대로>와 같이 가정과 사회에서 소외된 청소년에 관심을 가져 왔다. 이번 공연 애도의 방식>(신진호 연출, 두산아트센터 Space111, 2024.10.1.-19)은 기존 작업의 연장 선상에서 청소년의 학교 폭력을 둘러싼 문제를 다룬다. 소설가 안보윤이 쓴 단편 소설 ‘완전한 사과’, ‘애도의 방식’, ‘딱 한 번’ 3편을 연결해서 3막의 연작 구성으로 만들었다. 소설을 공연으로 올리는 경우 보통 두 가지의 길이 있다. 하나는 원작이 담고 있는 서사와 의미를 그대로 재현하는 데에 집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작을 토대로 적극적인 재해석에서 오는 새로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애도의 방식>은 전자를 택한다. 이때 연출의 핵심은..

[2024 봄 비평워크숍(수강생 비평문)] 누에: 지금, 고치를 뚫고 나와야 하는 것에 대하여 - <누에>

이우정  누에1) : 지금, 고치를 뚫고 나와야 하는 것에 대하여 |2024년 6월 1일(토) 오후 7시 30분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박지선 작/ 이영은 연출 |김수안 홍은정 한정호 나은선 이정후 김두진 이의령 박지은 이수정 박보승 홍은표 |     푸른 뽕잎을 갉아 먹는 천천한 흰빛 벌레의 움직임, 타원형의 부드러운 실타래로 자신을 둘러싼 채 편의를 위해 맞이하는 죽음, 탈피의 감각을 경험하고 날개를 예비하였으나 날아오르지 못하는 안타까움. 이 모두를 고스란히 가진 생명체. 작은 누에에게서 발견되는 이러한 생의 순간은 그리 낯설지 않다. 소리 없이 존재했고 그늘에서 사라져간, 어쩌면 우리의 시간 속 여인의 삶과도 닮아있을 것이었다. 제45회 서울 연극제의 하나로 무대에 오른 연극 누에> 역시 이런 그..

[2024 봄 비평워크숍(수강생 비평문)] 몸으로 쓴 서사시 - <인정투쟁: 예술가 편>

최성문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소통과잉의 시대를 산다. 인터넷 혁명은 몸이 사라진 타인을 친구로 두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시대는 얼굴 없는 친구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권력을 가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철학자 한병철의 주장처럼 ‘디지털 소통은 점점 더 공동체 없는 소통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소통과잉의 시대가 낳은 소통결핍은 몸이 없는 아우성이 넘쳐나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시대에 연극 인정투쟁; 예술가 편>은 절실하게 너를 부른다. 몸이 사라진 친구가 아닌, 서로의 몸짓이 의미 있는 눈짓이 될 유일한 존재, ‘너’를 부른다. 김춘수의 시 꽃>을 여러 번 낭독하면서 간절하게.  장애의 몸 그 자체가 캐릭터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물리적 심리적 장애물을 없앤 배리어 프리(b..

[2024 봄 비평워크숍(수강생 비평문)] 내 심연에 ‘네’가 있다 - 극단 사개탐사 <다이빙 보드>

최서율    흐르는 속성을 지닌 물은 담기는 그릇에 따라 모습을 변화시킨다. 엘리아데의 말처럼 “모든 존재의 저장소”1) 역할을 하는 물의 이미지는 변화를 목전에 둔 청춘의 모습이나 순리를 받아들이는 노년의 이야기를 다룰 때 주로 쓰인다. 버건디 무키 채널오프닝 멘트>(2023)는 청소년의 성장을 상징하는 매개체로 비(물)를 활용했고, 창극 리어>(2022)는 깨달음을 얻은 늙은 왕의 모습을 묘사하기 위해 무대 위에 웅덩이를 조성하기도 했다. 결국 물은 탄생과 소멸이라는 두 이미지를 동시에 지니는 셈이다.  물의 양가적 측면 중 하나를 조명한 공연은 많지만 두 속성을 동시에 전하는 공연은 드물다. 그러나 다이빙 보드>(말레나 페니쿡 작, 박혜선 번역·연출, 대학로극장 쿼드, 2024.06.14.~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