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림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은 이제 100년은 물론이고 앞으로의 10년도 쉽게 예측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야기와 전설>(조엘 폼므라 작·연출, LG아트센터 LG SIGNATURE홀, 2024.11.07~11.10)은 바로 그러한 미래에 관한 청사진 같다. 공연은 현재에서 얼마의 시간이 흐른 미래의 모습을 그린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과 인간이 함께하는 미래가 배경이다. 이 미래의 모습은 마냥 낯설지만은 않다. 기술과 사회의 발전이 점차 빨라지며 삶의 모습도 그에 맞춰 실시간으로 변하는 시대다. 21세기 초입과 비교했을 때 한 세기가 절반도 지나지 않은 지금, 이미 많은 삶의 양식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이야기와 전설>에 등장하는 로봇의 모습이나 사람들의 모습은 새로운 듯하지만 동시에 익숙한 부분들도 있다. 빠른 사회의 변화 앞에서, <이야기와 전설>이 그려내는 미래는 막연한 공상이 아닌 것이다. 이미 우리는 이 미래 세계에 발 디딘 것이 아닐까.
멀지 않은 우리의 모습
<이야기와 전설>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총 11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공연은 로봇과 인간이 함께하는 일상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화들을 보여준다. 로봇을 사거나 팔기도 하고, 로봇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인간이 하소연을 하기도 하고, 로봇과 사랑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물론 로봇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다. 정신병원에 어머니가 입원한 후 아버지와 갈등을 겪는 소년의 이야기,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 사이에서 자신이 갖춰야 할 모습을 고민하며 캠프에 참여한 아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어디까지나 근미래를 배경으로 할 뿐, 그 안에서 평범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각각의 이야기-사건은 필연적이지 않으며 서로 긴밀하게 연속하지 않는다. <이야기와 전설>은 긴장감을 가지고 긴 호흡의 서사를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마치 몇 권의 책을 듬성듬성 훑는 듯 이야기들은 느슨하게 얽혀 있다. 공연의 전반적인 연출에서도 이 느슨함은 그대로 적용된다. 다시 말해 로봇을 중점으로 하는 에피소드에 성 정체성을 두고 고민하는 소년 소녀가 등장하기도 하고, 반대로 소년 소녀들의 에피소드가 진행되는 한 구석에 로봇이 덩그러니 자리하기도 한다.
어딘가 성근 것 같은 공연이지만, 이야기들은 설득적이다. 우리의 삶이 늘 예측 가증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며, 필연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수선하다 싶은 플롯 구성과 연출은 오히려 사실적이다. 언제 어디에나 위치하는 로봇들, 로봇들이 있거나 말거나 자기들 좋을대로 이야기 나누기도 하는 사람들이 모습은 조만간 우리의 미래 모습일 듯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치열한 고민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진짜는 무엇이며 가짜는 무엇인가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한 소년이 무대 건너편에 서 있는 소녀를 향해 흥분하며 소리지른다. 소년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그는 로봇이 인간인 줄 착각하여 그에게 성적 욕구를 느꼈고, 그것이 수치스럽다는 것이다. 그는 진짜 인간이 아닌, 인간을 닮은 가짜에게 어떤 욕구-그것이 감정적이든 아니든-을 느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소년은 인간과 로봇, 진짜와 가짜를 계속해서 구분하고자 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소년이 던진 이 질문은 11개의 에피소드를 지나는 동안에도 계속된다. ‘진짜는 무엇이며 가짜는 무엇인가?’
<이야기와 전설>은 완벽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공존한다. 공연에는 로봇과 인간들이 등장한다. 로봇은 스스로 생각할 줄 알고 자기 자신에 관한 확신으로 살아가는 인공의 존재다. 로봇들은 이상적인 외형, 친절하고 상냥한 태도, 우수한 기능을 탑재했다. 로봇들은 명확하고 일관된 모습이다. 그에 반해 인간들은 로봇을 만들어냈고 로봇에게 ‘정답’도 재공했지만 스스로에 관해 여전히 헤매고 있다. 인간들은 성 정체성에 관한 혼란, 장애, 가정문제 등을 겪는다.
자신에 관한 불안인지 인간들은 로봇들을 대체품 혹은 소모품 취급한다. 가정부나 가정교사 같이 인간들이 하기 어려운 일들을 대신 수행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로봇을 두고 대체품, 소유물, 사물 취급한다. 혹은 로봇에게 집착하는 사람들도 있다. 로봇을 팔려고 내놓은 소년은 로봇을 리셋 해달라는 상대방의 부탁에 곤란해한다. 로봇의 기억을 지우면 그것은 살인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장나 폐기처분을 기다리는 로봇을 두고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는 일화도 그렇다. 로봇을 애정하는 대상을 넘어 자신의 인간관계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경우다.
그러나 로봇들은 그저 ‘존재’한다. 로봇들은 인간들이 어떤 태도와 생각으로 그들을 대하든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그저 스스로를 ‘좋은 친구’라 소개할 뿐이다. 로봇은 친구 혹은 가족의 역할을 다하며 자리를 지킨다. 인간들은 로봇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정의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는데 로봇은 묵묵하게 자기 자리를 지킨다. 로봇들은 빈 자리를 채운다.
한편 인간들은 스스로에 관해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특히 <이야기와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청소년이 대부분이다. 공연은 자기 정체성을 결정하지 않은 이들 청소년들을 통해 정체성에 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아이들은 남성과 여성, 어머니와 아버지 등 성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각각의 성 역할과 그에 따른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이 구분을 이미 없앤 사람도 있다. ‘원래’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그들은 의심하고 경계한다.
공연은 결론 없이 막을 내린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어떤 것이 정답인지에 관한 질문은 객석으로 넘어온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과 완벽해보이는 로봇들이 한데 엉키며 살아가는 모습, 그 속의 질문은 곧 우리의 미래일 것 같다. 완벽하지 못한 인간과 완벽해보이는 로봇이 한데 엉켜 사는, 멀지 않아 보이는 우리의 모습. 내가 누구인지에 관한 질문은 과학과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계속해서 헤매야만 하는 무한한 우주인 것이다.
흐려지거나 명확해지거나
무대는 인간과 로봇, 진짜와 가짜의 구분을 흐리기 위해 다양한 장치들을 활용하고 있다. 먼저 무대는 특정 공간을 지시하는 것을 기피한다. 멀지 않은 미래, 일상의 어느 공간이라는 추상적인 설정만 남겨둔 채, 구체적인 공간 표현을 최소화한다. 11개의 에피소드마다 장면 전환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장치이겠지만, 이러한 표현은 공연이 가지는 일회성과 특수성을 날리고 보편성을 환기한다. 에피소드는 암전을 통해 전환되는데, 매번 암전마다 무대의 대도구들은 위치를 달리한다. 짧은 호흡으로 진행되는 에피소드에 맞춰 짧은 간격으로 전환되는 무대의 구성은 관객들이 특정 장소에 집중하기 보다는 일상의 한 순간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더하여 프로시니엄 무대 안에 다시 프레임을 덧대 천장 부분을 가린 무대는 마치 텔레비전을 보는 듯, 무대가 화면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옛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보는 듯한 무대의 표현은 집중력을 높인다.
반면 위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조명, 백색등에 가까운 차가운 톤은 전반적으로 공연의 거리감을 조성하기도 한다. 이처럼 무대는 관객들과 심리적인 거리감을 조정하며 실시간으로 공연과 실제 사이를 흐리기도 하고 명확하게 하기도 한다. 특히 조명의 색감이나 조명기의 방향 등이 에피소드마다 달라지는 것은 아예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컨셉-양식을 바꾼 것처럼 보이게 한다. 덕분에 에피소드들은 더욱 명확하게 분할되고 이야기는 불연속한다.
로봇 연기도 이러한 효과를 더한다. 로봇들은 분명히 인간과 차이가 있는 움직임을 보인다. 딱딱한 관절의 움직임이나 음성 이펙트가 더해진 로봇들의 화술은 인간과 닮았지만 인간과 전혀 구분되지 않을 정도는 아니다. 동시에 이들 로봇들은 인간과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인간들은 이들의 ‘어색함’을 지적하지 않는다. 로봇들은 인간들 사이에 자리하여 편하게 대화한다. 로봇을 소유하거나 ‘가짜’라고 여기는 인간들과 인간들을 진심으로 아끼며 이들을 애정하는 로봇들의 모습은 오히려 진짜와 가짜가 무엇인지 애매하게 만든다.
<이야기와 전설>은 전반적으로 무대 표현에 있어서 관객과의 거리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공연과 달리 <이야기와 전설>은 각각의 에피소드마다의 집중도를 높이되, 에피소드들이 연결되는 것을 기피하는데, 무대와 조명이 이를 충실히 실현한 것이다. 덕분에 공연은 특정한 사건을 지시하지 않으면서도 우리에게 일어날 법한, 가능한 미래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매력적인 연기가 높이는 설득력
공연이 매력적이기 위해서는 단연 배우들의 연기가 큰 몫을 차지한다. <이야기와 전설>의 에피소드들은 대부분 청소년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성인 남성 한 명과 성인 여성 한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물들은 모두 청소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모두 성인 여성 배우들이다. <이야기와 전설>에서 여성 배우들은 모두 설득력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이들은 키를 포함한 외형을 청소년처럼 꾸몄을 뿐만 아니라 걸음 걸이, 몸의 무게 중심, 움직임의 속도 등 정신과 신체 모두 아직 성장이 덜 되어 미숙한 모습들을 분명하게 표현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로봇 연기 역시 공연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다. 우리가 소위 상상하는 로봇을 연기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타이밍이나 제스쳐 등을 확실하게 표현한 부분들이 그렇다. 음악을 틀어달라고 하는 소년의 부탁에 음악을 틀고 춤을 추는 장면은 로봇에게 기대하게 되는 뻣뻣한 움직임을 적극 활용하여 희극적인 효과를 가져갔다. 반면 ‘에디’라는 로봇으로 등장하여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나 폐기처분을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 있는 장면 등은 로봇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고안한 제스쳐와 움직임이 빛났다고 하겠다.
오늘의 이야기는 내일의 전설이 된다
삶은 많은 이야기들, 순간들의 연속이다. 오래 전 인류의 ‘오늘’이 시간이 지나 역사의 일부가 되고 전설이 된 것처럼, 지금 우리 삶의 이야기들도 언젠가는 전설이 될 것이다. <이야기와 전설>은 우화적이고 몽상적인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실적인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멀지 않은 미래-어쩌면 내일일 수도 있는 미래의 모습이 전설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의 고민은 우리에게도 있는 것이며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다가올 미래임을 공연은 감히 예언한다.
공연은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질문들은 던지고 간다. 나의 삶은 얼마나 더 ‘인공적인’ 모습으로 변할 것인가? 그 안에서 나는 얼마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우리의 ‘진실된’ 모습, ‘원래’ 모습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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