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지엄(비평워크샵)

[2025 가을 비평워크숍(수강생 비평문)]허물어가는 경계에서 명확히 지켜낸 것 <디 임플로이>

연극평협 2026. 1. 18. 20:17

허물어가는 경계에서 명확히 지켜낸 것 <디 임플로이>


권서의


천장에 닿을 듯한 큰 스크린. 그 아래에는 꽤나 큰, 그리고 텅 빈 구조물이 있다. 공연이 시작 되면 기계 같은 음성이 흘러나온다. 음성의 질감으로 미루어보아 우리가 지금 있는 이곳이 우 주와 미래, 로봇과 관련되었음을 알린다. 이어서 몇 가지를 더 알리는데, 관객은 무대 중간에 있는 구조물을 제외하고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과 촬영 또한 일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로써 관객은 티켓에 명시된 ‘객석 자리’에서 물리적으로 벗어날 기회를 받는다. 시청각 이미 지와  안내내용은  창작진이  관객에게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지구를  벗어난  우주  어딘가’를 경험케  하리라  예고한다.  관객은  지금  이  시점과  내  자리를  벗어나,  어딘가를  부유하며  <디 임플로이The  Employees>(우카시  트바르코프스키Łukasz  Twarkowski  연출,  올가  라븐Olga  Ravn  원작,  아 르코예술극장 대극장, 2025.10.25.~10.27)를 경험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 드러나는 연극성
큰 스크린을 통해 보이는 장면은 세련된 컷 전환, 줌 달리, 인서트, 클로즈업과 같은 영상기 법이다. 국내 연극장에서 세련된 영상기법을 보는 일은 쉽지 않다. 반갑지는 않았다. 영화 같 은  스크린의 장면구성은  오히려  연극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감각을  약화시키는  것처럼 보였 다.  무대  위에  올라가서  연기하는  배우들과  그  장면이  송출되고  있는  스크린을  동시에  보고 있자니, ‘영화 촬영을 구경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게다가 극장 안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 와 정보는 많았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어떤 정보를 받아들여서 조합을 해야 하는지 고 민이 필요했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과부하를 맞이하고 객석에 내려가는 순간, 오히려 연극성 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무대 위에 설치되어 구분된 연기 공간, 그 위 스크린을 통해 서사(자막)와 함께 보이는 연기 공간 안의  이미지. 이는  시각적으로 겹겹의 구조를 만들어낸다. 스크린은  서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스크린을 포함한 연기공간은 이야기를 보여주는 과정을 다시 보여주며 연극임을 알리고 있다.  연기공간이  올려진  무대에는  배우와  관객이  함께  존재한다.  이  장면을  다시  객석에서 바라보면, 지금 이 순간 벌어지고 있는 일 자체가 ‘연극’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렇게 공연 은 ‘연극임을 보여주는 연극’, 즉 겹겹의 구조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메타적인 구조를 갖게 된다. 그러나  <디 임플로이>는 연극의  3요소를 무대  위에 올려 당연하면서도  단순한 사실인 ‘이것은 연극’임을 경험과 감각을 활용해 연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으로 느끼는 세 가지의 층
관객은 객석을 벗어나 공연 공간을 돌아다닐 수 있다. 내가 바라볼 시야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은 꽤나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들어갈 수 있는 곳’과 ‘들어갈 수 없는 곳’의 구분은 명확하다. 관객은 객석을 벗어났으나 여전히 ‘관객’으로서 존재한다. 이 지 점에서 <디 임플로이>는 ‘보이는 자’와 ‘보는 자’, 두 개의 시선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시 선이 겹칠 때, 세 가지를 자각하게 된다. 첫째는 창작진이 카메라를 통해 스크린으로 발화하 는 세계, 둘째는 촬영감독과 배우가 함께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생생한 현장, 셋째는 그 모든 장면을 바라보는 관객이다.
  이처럼 <디 임플로이>의 무대는 단순히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보는 일’이 어떻게 이루어 지는지를  드러내는  공간이 된다.  그럼으로써,  연극은  장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보는  행위 자 체’를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때 관객은 관찰자 그 이상의 역할을 맡게 된다. 자신이 어 떤  위치에서  보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  또한  누군가의  시야  속에  포함되어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이로써 관객은 보고 있는 자와 보여지게 되는 자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디 임플로 이>는 ‘나’라는 존재가 극장 안에서 객석을 채우는 관객을 넘어 극장 안에서 연극을 꾸려나가 는 구성원 중 하나라는 사실을 낯선 방식으로 경험하게 한다.


모호함 끝에 있는 분명한 단 한 존재, ‘나’
<디 임플로이>에서 ‘보여지기만’ 하는 사람은 아마 배우뿐일 것이다. 반면 관객은 보는 자 와 보여지는 자 경계 어딘가에 있다. 이 모호함은 작품의 서사에도 반영되어 있다. 등장인물 은 사람과 그들을 따라 만든 휴머노이드이다. 누가 사람이고 휴머노이드인지 구분하기 어려워 지는 지점에 닿는다. 게다가 아이러니하게 ‘원본’임에도 불구하고 휴머노이드가 되고 싶어 하 는 사람도 있다. 인물들은 경계 어딘가에 계속 머물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감각적으로 찾아나 간다. 이야기의 배경은 미래이지만, 그들이 보여주고 그려내는 ‘미래’는 단순한 시간을 시사하 기보다 미래가 갖는 ‘미지’이다. 그것이 불분명한 경계를 의미하는지, 혹은 기존 질서의 전복 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다. 마치 무대와 관객의 경계를 무너뜨려 관객의 존재를 모호하게 만 든 것처럼 말이다.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드는 질문은 “이 안에서의 나는 누구인가?”
  이 공연은 내용과 형식을 통해 끊임없이 경계를 흐리면서 정체성을 흔드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서 배우는 배우이며 관객은 관객임을 재차 확인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 과정은 결코 허무한 것이 아니다. 모든 모호함은 결국 하나의 지점에서 마무리 된다. “나는 지금 이것을 보고 있다.” 곧, 지금 이 곳에서 이 연극을 보고 있다는 ‘나’에 대한 자각이다.


<디 임플로이>의 무대와 형식은 메타적 구조를 갖는다. 이를 통해 관객의 인식 구조를 메타사 유로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가 보인다. 보여주는 것과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만들어낸 흐릿 함. 관객은 그 안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찾아간다. 이 공연에서 주목되는 건 서사의 내용이 아 니다. 무대 위를 구석구석 살펴보면서 극장을 음미할 수 있는 형식이다. 이 형식에 몸을 맡기 게 되면 자신의 몸과 자발성을 통해 극장 안에서 ‘이것은 무엇인가’ 발견을 하고 질문을 하게 된다. 그 질문은 ‘이것을 보는 나는 무엇을 하는가’로 뻗어나가 다시 ‘나’라는 존재 자체로 돌 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