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지엄(비평워크샵)

[2024 가을 비평워크숍(수강생 비평문)] 무심한 슬픔, 태도를 지적하다 - <애도의 방식>

연극평협 2025. 1. 23. 01:21

 

권라희

 

  경계는 흐릿하다. 폭력의 순환고리가 이어진 가정과 학교, 서로 얽힌 관계 속.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은 불분명하고 책임과 회피의 가늠 또한 무색하다. 저마다의 선택으로 그 시간을 떠나보낸다. 그 무엇도 명확히 구분되거나 해결되지 않은 채 삶의 시간은 그대로 흘러간다. 연극 <애도의 방식>에서 목격한 현재의 단면이다.

 

사진제공: 두산아트센터

 

흩어진 점으로 이어진 주제

  연극 <애도의 방식>은 소설가 안보윤의 단편소설 완전한 사과애도의 방식’, ‘딱 한 번을 원작으로 삼고, 등장인물과 관계를 교차시켜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냈다. DAC Artist(두산아트센터 아티스트)로 선정된 연출가 신진호의 작품이다. 배우는 단 6, 이들은 여러 인물을 연기하며 3막으로 나뉜 극에서 스치듯 만나고 강력하게 얽혔다가 떨어진다. 이는 원작 단편소설 속 제각각의 세계를 연결하는 약속이자, 장치이기도 하다.

  1막에 해당하는 완전한 사과는 상대방에 일방적으로 가한 폭력에 대해 상호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과라는 것이 성립할 수 있는지 묻는다. 기간제 교사였던 소윤은 어린 시절부터 폭력을 일삼은 오빠가 결혼 후에도 행사한 가정폭력과 살인미수 등으로 인해, 가족이라는 굴레로 신상이 공개되고 일자리를 잃는다.

  대신 사과하러 찾아간 새언니가 오히려 공포에 떨며 죽음을 택하려 하는 걸 보고 피해자이기도 한 그 자신도 다른 측면에서 폭력적일 수 있음에 좌절한다. 폭력에 지쳐 히키코모리가 된 남동생 도윤을 방 밖으로 끌어내려 애쓰면서도, 어린 시절 오빠가 남동생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 두려움에 숨어들어 상황을 내버려둔 자신의 이중적인 면을 탓한다.

  극중 소윤은 자신을 가만한 사람이라고 지칭한다. 게으른 게 아니라 격렬히 노력해서 가만해질 수 있다고 항변하는 그를 두고 관객은 자신을 중첩시킨다. 연출가 신진호는 소설 속 1인칭 문장을 극중에서 독백이자 나레이션과 같이 처리함으로써 객관적으로 거리감을 두면서도 동시에 몰입하도록 유도한다.

소윤은 하교 도우미가 되어 만난 초등생 동주가 동급생인 승규에게 학교폭력을 당하는 걸 알고 자신의 방식으로 도우려 하지만 그 또한 또 다른 폭력을 행하는 결과라 역효과만 난다. 폭력을 가한 대상인 오빠와 승규를 동일시하면서 제발 사과를 하라고 발악하는 소윤의 모습은 그 자신조차 자유롭지 못한 잠재된 폭력성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몸짓에 가깝다.

 

인물 층위를 강화한 대비적 요소

  원작 소설 애도의 방식딱 한 번의 이야기가 얽혀 있는 2막은 소란함이라 표현되는 시끄럽고 어수선한 시공간에서 저마다의 선택을 그린다. 이 소란은 사람들의 의심 어린 시선과 함부로 지껄이는 말들에서 기인한다. 초등생 때부터 학교폭력을 당해온 동주가 승규를 살인했을 것이라 의심하는 눈초리와 끊임없이 쏟아내는 뒷얘기들로 세상은 소란하다.

  극중 동주는 소란한 곳에서 소란하지 않은 인간으로 멈춰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고 말한다. 이는 자신의 목소리와 말을 지우고 공간에 무심하게 놓여진 식물과도 같이 존재하겠다는 의지와 같다. 폐공사장에서 아들이 죽은 이유를 알고 싶다며 자신이 원하는 진실을 강요하는 승규의 엄마, 돈벌이하느라 정작 아들에 대해 전혀 모르는 승규의 아빠, 살인자로 의심받는 아들을 지키겠다고 아무 일도 없었다고 주입하는 동주의 엄마는 그토록 동주가 피하고 싶은 소란의 기원이며 그를 옥죄는 올가미다. 그럼에도 동주는 그가 천명한 의지와 같이 자신을 결코 드러내지 않고 그저 회피하거나 묵묵히 감내하기만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극적 요소는 무대와 음향, 연출이다. 무대에는 회색의 둔탁한 기둥 4개가 자리한다. 이 기둥은 벽이었다가 문이었다가, 시공간의 가름선으로도 기능한다. 특히 이 기둥변에 경찰이 접근 금지를 나타내는 노란 테이프를 붙이고 동주 엄마가 다시 황급히 뜯어낼 때, 무대는 금단의 공간이 만들어지고 다시금 사라지는 효과를 얻는다. 나아가 걷어낸 노란 테이프를 동주의 몸에 칭칭 감는 동주 엄마의 행동은 아들을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구속하고 소외시키는 모습으로 상징성도 획득한다.

  소란하지 않은 인간이고픈 동주와 대비되는 세상의 소란함을 상기시키는 요소로 음향이 적재적소에 쓰였다. 거의 말이 없고 꺼낸 말조차 문장을 맺지 못하는 동주와 달리, 무대는 갖가지 소음으로 가득 찬다. 라디오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트롯 선율부터 거슬리는 휘파람 소리, 핸드폰의 벨소리, 의미 없이 떠들어대는 마을 할매와 아줌마들의 수다에 이르기까지 음향은 극중 인물 동주를 점차 강력하게 억압하는 요소로 활용됐다.

또 다시 폭력을 휘두르다 제풀에 넘어져 사망한 승규를 구급차에 실어 보내고 이모라 부르던 소윤과 마주친 동주는 슬픔에 절은 한 마디를 남긴다. 승규의 정강이를 딱 한 번만차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최후에 살아남은 자가 됐다.

  그렇게 소중한 것을 떠나보낸 극중 인물들이 택한 애도의 방식은 다양하다. 동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그 자신과 승규에 대해 진실이라는 걸 묻어두고 그대로 침묵하는 방식으로 애도했다. 가정 폭력의 피해자이자 한편 타인에게 가해자이기도 했던 소윤도 동주의 방식에 자신을 비춰보고 나서야 지난한 과정을 버텨낸 자신을 애도하고 그 시간을 떠나보낸다. 장례식에 온 자식의 동급생의 말을 통해 사실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애써 부정하고 싶었던 승규의 엄마는 결국 제 입으로 진실을 말하고서야 애도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이 작품, 연극 <애도의 방식>은 우리에게 자신의 삶에서 어떤 애도의 방식을 택할 것이냐고 묻는다.

 

사진제공: 두산아트센터

 

우리는 애도를 제대로 해본 적이 있을까?!

  작품의 제목 애도의 방식을 곱씹어본다. 애도는 슬플 애(), 슬퍼할 도()를 써서, 국어사전에서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 또는 그 태도라 풀이한다. 나아가 죽음에 대해 슬픔을 표하는 문화도 아우른다고 표현한다. 또한 심리학 용어로는 중요한 대상과의 이별, 심리적 상실 등을 경험한 후에 일어나는 인지적, 정서적, 행동적 변화의 과정을 의미한다.

  이 작품은 한국 사회가 개인적 혹은 사회적으로 처한 상실의 아픔을 애도라는 방식으로 제대로 마주하고 해결해본 적이 없음에 주목한다. 중요한 대상의 상실에 따른 고통이 사회 전반에 걸쳐 공통적이고 보편적이라면 이를 사회적 트라우마라는 큰 범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개인의 삶과도 곧 연결되는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떠안은 사회적 트라우마를 제대로 마주하지도 찬찬히 살펴보지도 못했다. 그저 급박하게 변화하는 사회 속 문제 해결이라는 명분으로 멀리 치워버리기만 했을 뿐이다. 때문에 연극 <애도의 방식>은 제대로 된 애도에 무감각하고 이를 무심하게 흘려버린 우리의 지난 행태를 완곡하지만 분명하게 지적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극중 소윤이 칭한 가만한 사람이 곧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연극 <애도의 방식>은 우리에게 무엇을 청하고 있을까. 공포에 직면하더라도 상황을 제대로 마주하라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닐까. 존재가 지워진 삶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기에.